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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청산 가자
재미있는 소설집이었다!'하긴'은 환멸감을 불러일으키는데, 내가 늘상 떠벌이고 생각하는 것들도 멀리서 혹은 나중에 보면 다 이런 꼴일까 싶어 착잡하기도 했다. =====14/126네 딸년들은 파브르의 시점에 있겠지. 내 딸이 식별 불가능한 개미의 얼굴을 하고 흙에 고개를 처박은 채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복잡한 개미집을 짓고 있는 동안, 물웅덩이 앞에서 한없이 당황하는 동안, 네 자식들은 조감하며 거기가 아닌데, 그렇지 거기지, 하겠지. 21/126당시 오지는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시간강사를 하고 있었다. 몇 해째 교수 임용에 떨어져 신경이 곤두서 있을 때였다.강사를 시작하던 마흔 살 무렵에는 전혀 초조하지 않았다. 그녀는 순진하지 않았고 학계의 물정도 알 만치 알았다. 그리고 다들 그랬다. "..
7% 소설가로서 나는 예언의 내용보다는 그 형식이 언어여야만 한다는 게 더 흥미롭다. 어떤 예언가가 환상 속에서 미래의 뭔가를 봤다고 해도 그는 그것을 자신의 지식 수준에 맞춰 언어로 표현해야만 한다. 실제로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면 모를까, 그걸 언어로 변환한 이상 그 진의는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게다가 번역까지 된다면 왜곡은 피할 길이 없다. 결국 예언은 그 형식 때문에 빗나갈 가능성이 많은 셈이다. 8% 하지만 그건 옆에서 보면 두꺼운 알이 하얗게 보이는 안경을 쓴 외삼촌이, 아직은 사십대였던 외삼촌이, 평생 책만 읽은 가난뱅이 책벌레 외삼촌이, 꼼꼼한 교열자로 유명했으나 인터넷과 검색기가 교열을 대체하면서 20세기와 함께 쓸모가 사라진 외삼촌이 자기 머릿속을 뒤지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19/48비 오는 날, 국수 한 그릇. 이렇게 작은 것에 인생의 행복이 있는데, 도대체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요? 20/48반면 기행은 좀 변했다. 마흔 살이 지나면서부터 만사가 허무해졌고, 술이 늘었다. 따져보니 인생은 전반적으로 실패였다. 원했던 삶이 있었는데, 모두 이루지 못했다. 시인으로 기억되지도 못했고,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지도 못했으며, 시골 학교의 선생이 되지도 못했다. 20/48그때 나는 한 사람도 살지 않는 세상을 상상했다네. 제일 먼저는 사막이나 바다, 혹은 북극과 남극처럼 실제로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을 생각하다가 그 다음에는 송전처럼 외진 마을을, 그 다음으로는 또 서울이나 평양처럼 큰 도시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풍경을 떠올렸지. 그랬더니 무서운 생각이 들..
재미있게 읽었고, 곱씹어보고 싶은 부분도 많았다. 현대기술사회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가 어디에서 유래하고 진짜 문제는 무엇이며 그 해결책은 어떤 방향이 되어야 할지, 큰 흐름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어서 배우는 바가 많았다. 14% 택시 없는 택시 회사, 기사를 쓰지 않는 미딩 회사, 단 한 칸의 방도 없는 숙박 회사, 이게 플랫폼 시대에 변화한 자본의 모습이죠. 14% 그런 경험을 가진 우리가, 낡은 기계의 옆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새로운 기계 시대를 거부한다는 건 너무 어리석은 일 아닐까요? 오히려 새로운 기술과 파트너십을 만들고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더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요? 15% 첫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 냈다는 기술은 현재 얼마나 발전한 것일까? 그 기술은 인간의 삶..
이 소설집은 전에 읽다가 자동반납된 것을 그냥 내버려두었던 것인데, 다시 빌려서 마저 읽길 잘했다. 52%우리가 불행을 극복하는 방식은 태연해지는 것이었다. 낫는다는 것을 믿고 그 미래가 이미 도래한 것처럼 굴기. 그렇게 하면 반복되는 불행들을 점점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었다.Note: 이것은 수행성의 개념이기도 한데, 왠지 수행적으로 살려고 해봐야 불행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처럼 들려, 다만 모른척 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처럼 들려, 조금 뜨끔했다. 어쩌면 이게 사실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52%내가 취업에 실패할 때마다 아빠는 "남들 하는 것 좀 봐봐라. 사람이 어떻게 저 좋은 것만 하고 살겠노?"라고 했다. 그런 게 삶인가? 모욕을 견디는 것...... 그렇다면 나는 이..
5/71 도서관에서 특강을 하던 그가 유럽에서 공부했다면 나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공부했다. 그것은 평생을 방구석과 집안과 시설에 갇혀서 여전히 조선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21세기의 한국 사회를 배웠다는 뜻이다. 그것은 21세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게 아니라 21세기를 전혀 다르게 겪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그것이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란 걸 안다. 하지만 이전의 나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이기 때문에 우물 밖 세상에 대해 배워야만 세상에 대해 아주 작은 소리로라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내가 만난 우물 밖 사람 역시 자기만의 우물 안에 갇힌 듯 보였고, 그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의 세계를 몰랐으니 그도 나의 세계를 모르는 게 공평하다고. 그러니까 인..
장강명이 엄청 아끼는 소설이라고 그래서 읽어보았다. 정세랑 소설은 전에 '지구에서 한아뿐'만 읽었었는데, 예쁘기만 한 소설 느낌이라 더 찾아 읽지는 않았다. 피프티피플은 음, 마지막에 이걸 이렇게 엮는구나, 싶은 재미가 있고, 세월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작가가 착한 사람인 것 같다. 437/455 " (...) 그냥...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
2% 헌신할 수 있는 일인가. 어떤 직업의 귀천은 그 질문으로 대강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2% 누구를, 혹은 무엇을 위한 헌신인가. 불쉿 업무와 불쉿이 아닌 업무는 이 질문으로 대충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5% 2020년대 한국 소설가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인지도 시장에서 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름이 알려지는 자리건 얼굴이 알려지는 기회건 가릴 처지가 아니다. 브이로그를 찍거나 유튜버가 된 문인도 여럿이다. 7% 운동과 식사에 하나 더 보태자면 수면이다. 매일 일정한 시각에 잠자리에 들고 일정한 때 기상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보통 오후 11시 반쯤 자서 오전 6시 반 전에 일어난다. 늦잠을 자면 마음의 긴장이 풀리고, 그러면 하루를 망치기 쉽다. 그리고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한다. *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