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야 청산 가자
오지은, 마음이 하는 일, 위고, 2022 본문
읽어본 글이 많았다. 서문을 다시 읽어보니 씨네21을 비롯해 여러 곳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라 했다. 그래서 낯이 익었구나. 오지은의 글을 읽다보면 그렇게 우는 소리를 하면서도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건실히 작업물들을 내놓고 있는 것이 건강염려증 같아 웃음이 날 때도 있지만, 사람 속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으니까. 이번에 다른 뮤지션 에세이를 같이 읽으면서 보니까 오지은의 글은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에 대한 훈련이 많이 된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책의 글들 자체가 컬럼 성격으로 쓰인 것들이니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꾸준한 달리기 습관을 통해 다져진 글의 느낌이 있다는 것. 역시 하루키과인 것 같은데..
38/94
고시원에 살았던 적이 있다.
창문이 있는 방은 몇만 원을 더 줘야 했다. 형편은 빠듯했지만 창문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Note:
에세이는 자꾸 나의 경험으로 생각이 튄다. 나는 옥탑방에 살았다. 옥탑방인데도 창문이 없었다. 형편이 빠듯해서 창문을 포기했다. 창문 대신 간유리가 있는 문이 있었다. 방 안에서 간유리를 통해 해가 뜨고 날이 밝고 해가 지고 밤이 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무섭고 괴로웠다.
'형편은 빠듯했지만 창문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와 '형편이 빠듯해서 창문을 포기했다' 간 거리를 생각한다. 내가 그 집에서 살았던 시간 동안 창 밖을 볼 수 있었더라면 나는 좀 다른 사람이 되었으려나.
62/94
앞에 적은 '간단한 길', '백발백중', '즉각적 열광'의 반대편에 아줌마가 있다. '어려운 길', '백발일중', '점차적 냉담'.
Note:
내가 노화와 관련해 느끼는 생각과 비슷해 적어둔다. 예전엔 하나를 시도했을 때 힘들이지 않고 대개 그 하나가 성공하는 편이었다면, 이젠 열을 시도해도 하나도 성공하지 않는다. 하늘이 인심좋게 쏘아주던 스포트라이트는 더 이상 찾을 수 없고, 하지만 그래도 더듬더듬 손을 짚어가며 계속할 수 밖에. 열 번만 시도해서 그런가봐. 백 번 시도하면 하나는 성공한다니 희망을 가져야지.
70/94
사회적으로 걸려있는 마이너스 50퍼센트 효과라도 조금 없애주면 안될까. (...) 자기 일에 책임을 지는 변변한 어른이 되기도 어렵고, 쇠퇴라는 개념과 싸우기도 어렵고, 거스를 수 없는 노화 또한 유쾌하지 않은데, 이 다루기 까다로운 아줌마의 굴레까지 상대해야 한다니.
78/94
<헌터X헌터>의 곤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상상을 해보자. 그는 이렇게 말하겠지. "이모,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다시 일어서서 그냥 열심히 하면 되잖아." 까만 눈동자의 곤 앞에서 나는 스스로를 더 작고 한심하게 느낄 것이다. 할 말이 없어진 나는 "그래... 곤 말이 다 맞아..." 하고 억지로 일어나겠지만 기운은 여전히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나는 곤 같은 영웅이 아니니까. 역시 손오공 옆에서 계속 버티는 크리링을 무시할 게 아니었다.
88/94
용기가 있어서 죽는 게 아니다. 그만 얻어맞고 싶어서, 이제 다 그만두고 싶어서 내려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 인생이란, 길 한가운데에 샌드백처럼 서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 이제 이 자리에 그만 서 있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닐까.
Note:
이 부분은 뭐랄까 어떤 마음을 참 적확하게 묘사한다는 느낌이어서, 마음이 약할 때 보면 안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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