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야 청산 가자
20230110 원하는 공부가 있다면 본문
오늘 우연히 여기 사는 한국인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게 되었다.
내가 지난번 석사과정에서 내가 계획한 주제가 아니라 지도교수가 제안하는 주제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썼는데, 거의 맨땅에서부터 혼자 씨름하면서 많은 노력을 부었는데, 마지막에는 좋은 성적 받고 졸업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간신히 버텼는데, 결과적으로 기대했던 성적을 못 받게 되니 많이 허탈했다, 상실감이 너무나 컸다, 이런 얘기를 했다. 전에 썼던 다른 석사논문은, 그때도 외롭게 썼지만, 어쨌든 내가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것에 대해 내 나름의 답을 찾아보려 했던 것이기 때문에, 논문 자체는 허술한 데가 많아도 그것을 떠올리면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 드는데 이번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국의 석사논문은 성적이 매겨지지 않기 때문도 있는 것 같다. 누군가 공식적으로 니 논문 똥이야, 라고 했으면 그래도 내가 타격받지 않고 뿌듯하고 기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졸업논문 평가 같은 건 좀 없어지면 안 되나. 심지어 여기선 논문 성적이 C 이하면 지원서를 안 받는다는 박사과정 공고들도 많은데 그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만큼 개별 심사자의 평가가 객관적이고 납득가능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여기서도 석사논문 주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또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아서 많이 걱정이 된다, 그런 얘기를 했다.
그때 얘기를 듣던 사람이 지나가듯 말했다. 만약 관심있는 주제가 분명히 있는 거라면, 그 주제를 연구하는 교수를 먼저 찾아서 그 사람이 있는 학교로 가 그 사람 밑에서 논문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구나. 늘 너무 늦은 것 같다, 시간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만드는 짓거리를 내가 계속 하고 있는 거구나. 첫번째는 몰랐다고 쳐도 두번째라면 네 무능이지, 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아 머리에 피가 가시는 느낌이었다. 너무 늦었는데도, 너무 늦었기 때문에, 나는 얼마 안 남은 선택지들을 놓고 실수하지 않으려 고심하다 또 늦고, 무슨 선택을 하든 나중에는 잘못된 선택이었나 자책하며 또 늦고, 다시 또 가지 않은 길을 가보겠다고 되돌아가다 또 늦고, 이러는 와중에 쌓이는 자기혐오와 분노, 현실도피적 망상들 속에서 결국은 길을 잃고 멍하니, get your shit together get your shit together 프린세스 캐롤린이 때려주는 뺨을 맞으며 간신히 서 있다.
내가 노르웨이에 온 이유, 아직 돌아가지 않은 이유, 앞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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