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골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문학동네, 2020

나풀  2023. 8. 7.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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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국수 한 그릇. 이렇게 작은 것에 인생의 행복이 있는데, 도대체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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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기행은 좀 변했다. 마흔 살이 지나면서부터 만사가 허무해졌고, 술이 늘었다. 따져보니 인생은 전반적으로 실패였다. 원했던 삶이 있었는데, 모두 이루지 못했다. 시인으로 기억되지도 못했고,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지도 못했으며, 시골 학교의 선생이 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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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한 사람도 살지 않는 세상을 상상했다네. 제일 먼저는 사막이나 바다, 혹은 북극과 남극처럼 실제로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을 생각하다가 그 다음에는 송전처럼 외진 마을을, 그 다음으로는 또 서울이나 평양처럼 큰 도시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풍경을 떠올렸지. 그랬더니 무서운 생각이 들더군. 그때에도 보름이면 이 세상은 달빛으로 가득차지 않겠나? 달이야 거기 사람이 있든 없든 찼다가 이지러지는 그 자연의 법칙을 반복하겠지. 그런 무심한 것이 자연이라는 것도 모르고 인간들은 거기에 정을 둔단 말이지. 마치 해와 달이 자기 인생을 구원해주기라도 하듯이 말이야. 오호, 우리의 태양이시여, 영원한 달님이시여, 라고 찬양하면서. 하지만 해와 달은 그 누구의 인생도 구원하지 않아. 우리도 그런 자연을 닮아 노래는 들리는 대로 들으면 되고, 춤은 보이는 대로 보면 되는 거지, 좋으니 나쁘니 마음을 쏟았다 뺏었다 할 필요는 없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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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와 패배가 같은 걸 일컫는 다른 말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전쟁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기행은 생각했다. 차라리 죽어버린다면, 어떨까? 그러나 마흔이 지나자 죽는 일도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불타버렸으므로 그는 가족을 이끌고 고향인 정주로 피난을 갔다. 고향 인근에서 숨어 지내며 그는 평화에 대한 시를 번역했다. 불붙은 산하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지옥보다 더 나쁜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은 지옥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이었다. 그런 삶에도 탈출구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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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탄 남자는 기행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네 안에는 사회주의 건설을 향한 발걸음을 막아서는 온갖 낡고 보수적인 것, 소극적인 것, 침체적인 것이 없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건 일종의 교리문답과 같았다. 여기에는 '없다'라는 대답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없다고 대답했다면, 스스로 그 부재를 증명해야만 했다. 부재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인텔리들이나 품음직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당은 지난 이 년에 걸친 보건위생 사업을 통해 코흘리개라도 알 수 있게 제시했다. 보건위생 사업의 개조 성과를 유해 곤충 및 동물 박멸량으로 확인했듯이 마음속 보수주의와 소극성의 존재 유무는 생산량으로 드러난다는 것. 그렇기에 공화국 창건 십 주년을 맞은 그 해 9월, 오 개년 계획을 일 년 반 앞당겨 완수하기 위해 근면성실을 넘어 당이 제시한 사회주의 건설의 강령적 과업을 전투적으로 수행할 것을 종용하는 '전체 당원들에게 보내는 당 중앙위원회의 편지'를 받아든 뒤에서 문인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붉은색 표지 때문에 '붉은 편지'라 불리던 이 소책자에는 지식인들도 보수주의와 소극성을 탈피하고 직접 생산 현장으로 뛰어들라는 지시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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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시점에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분노한 시민들이 스탈린 동상의 머리를 깨버렸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시위는 유혈사태로 이어져 시민군과 소련군은 총격적을 벌였고, 나흘째 되던 날 시민군이 의사당을 점령하면서 헝가리혁명이 시작됐다. 너지 임레가 이끄는 혁명정부는 정치범 석방, 비밀경찰 폐지, 소련군 철군 등의 개혁안을 발표하고 바르샤바조약기구와 코메콘 탈퇴를 선언했다. 이 사건은 소련과 북한 모두에 영향을 미쳤다. 다른 위성국가들에도 자유화 바람이 불 것을 우려한 소련은 무력으로 혁명정부를 무너뜨렸다. 북한에서는 이런 일련의 국제적인 움직임을 스탈린 격하 운동에서 비롯된 수정주의로 규정하고, 주체를 내세우며 유일 지도 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이로써 기행이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1956년 평양에 불었던 짧은 해빙의 물결은 거센 역풍을 맞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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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이 문학에서 낡은 사상 잔재를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라고 교시를 내린 뒤, 전국의 도서관과 도서실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이 소장중인 책들 가운데 반당 반혁명 작가의 책들을 회수해 공개적으로 불태우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거기서 불타는 한 권 한 권은 저마다 하나의 세계였다. 다연히 서로의 주장은 엇갈리고, 지향점은 다르고, 문체는 제각각이다. 그렇게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고, 현실은 그 무수한 세계가 결합된 곳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세계가 있고, 또 추악한 세계가 있다. 협잡이 판치는 세계가 있고, 단아하고 성실한 세계가 있다. 어떤 세계는 지옥에, 또 어떤 세계는 천국에 가깝다. 이 모든 세계가 모여 다채롭고도 영롱하게 반짝이는 빛을 발하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 한 권이 불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현실 전체가 몰락하는 것이다. 당과 수령, 그리고 그들의 충실한 대리인인 병도는 자신들이 조립한 언어의 세계만이 리얼하다고 말하지만, 수많은 세계를 불태우고 남은 단 하나의 세계라는 점에서 그들의 현실은 한없이 쪼그라들다가 스스로 멸망하리라. 언어와 문자는 언어와 문자 자신의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리얼리즘이란, 그런 언어와 문자가 스스로 실현되는 현실을 말한다. 거기에는 당과 수령은 물론이거니와 기행의 자리마저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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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모르는 불행과 병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언어는 뜻밖의 방식으로 인간을 위로한다. 당신, 이미 죽은 사람, 이라는 말. 그 겨울의 골짜기에서 당신도 얼어붙고 당신의 노래도 얼어붙었다, 는 말. 그리고 봄에 내가 당신의 노래를 분명히 들었다, 는 말.
 
40/48
그리고 서희가 사람들로 북적대는 혜산역 대합실 한켠에서, 어떤 두려움이나 부끄러움도 없는 선한 표정으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라고 시를 읊조리기 시작하던 순간을 기억했다. 그 순간, 자신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 시의 한 음절 한 음절이 어떻게 자신의 귀에 와 박혔는지, 그리고 이제 더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그 아름다운 언어가 어떻게 쇠도끼 날처럼 자신의 머리통을 내리쳤는지. 그래서 어떻게 자신과 시를 둘로 쪼개놓았는지. 이제 시는 자신의 것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불행과 시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한참 걷던 기행은 문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돌아섰다. 그러자 눈보라가 그를 뒤흔들었다. 기행은 지금 그렇게 가만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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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스로 마음속에 무엇을 믿고 기약하는 사람으로서 살아나가는 사람이었으며 가슴속 깊이 높고 큰 것을 길러가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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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민들이 개간하기 위해 피우는 불이 땅속 뿌리로 타들어가는 지불이라면, 그래서 석 달 열흘씩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보이지 않는 불이라면, 천불은 저절로 생겨나 순식간에 숲 전체를 활활 태우며 나무들을 서 있는 숯으로 만든다고 했다. 그 불을 보고 두메의 화전민들은 생을 향한 어떤 뜨거움을, 어떤 느꺼움을 느낀다고 했다. 불탄 그 자리에서 새로운 살길이 열리는 것이기에. 천불을 바라보며 흥분한 청년 옆에서 서 있자니 기행의 가슴도 은은하게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그때 골짜기로 사이렌의 고고성이 울려퍼지며 잠든 마을이 깨어났다. 그때까지도 기행은 어디에서도 오지 않고,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천불에 휩싸여 선 채로 타오르는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47/48 작가의 말
당시 북한의 문학잡지에 실린 다른 시에 비하자면 이 정도는 노골적인 찬양시가 아니다. 하지만 1956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백석으로서는 처음으로 현실의 수령을 호명한 시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또한 이것은 마지막 찬양시, 아니, 살아생전 그가 발표한 마지막 시가 되고 말았다. 그토록 강요받던 찬양시를 마침내 쓰는 마음과, 그뒤 삼십여 년에 걸친 기나긴 침묵을 이해하기 위해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옛말과 흑백사진과 이적표현의 미로를 헤매고 다녔다. 
(...)
앞의 두곡은 백석이 들은 것이 확실하지만, 덕원의 신학교 악단이 연주하는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을 그가 들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기행은 1937년의 어느 여름날, 해변에 누워 이곡을 듣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이오덕이 엮은 아름다운 시집 <<일하는 아이들>>은 경상북도 상주군 공검국민학교 2학년 박춘임이 쓴 <햇빛>으로 시작한다. 책에는 이 시가 1958년 12월 21에 쓰였다고 인쇄돼 있다. 이즈음 북한의 백석은 삼수의 협동조합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의 내 나이와 같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동갑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저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 기행에게는 덕원신학교 학생들의 연주를 들려주고 삼수로 쫓겨간 늙은 기행에게는 상주의 초등학생이 쓴 동시를 읽게 했을 뿐. 그러므로 이것은 백석이 살아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에 대한 이야기다. 백석은 1996년에 세상을 떠났고, 이제 나는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된 그를 본다.
 *note: 소설가는 이런 일을 할 수 있구나. 참 좋구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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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기준으로 현재를 결정하라고 그랬었지.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