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골

피프티피플, 정세랑, 창비, 2016

나풀  2023. 7. 30. 19:52

장강명이 엄청 아끼는 소설이라고 그래서 읽어보았다. 정세랑 소설은 전에 '지구에서 한아뿐'만 읽었었는데, 예쁘기만 한 소설 느낌이라 더 찾아 읽지는 않았다. 피프티피플은 음, 마지막에 이걸 이렇게 엮는구나, 싶은 재미가 있고, 세월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작가가 착한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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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냥...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내 말 이해합니까?"

"릴레이 같은 거란 말씀이죠?"

"그겁니다. 여전히 훌륭한 학생이군요. 물론 자꾸 잊을 겁니다. 가끔 끔찍한 자가 나타나 그 돌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기도 하겠죠. 그럼 화가 날 거야.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조금만 긴 시간을 가지고 볼 기회가 운 좋게 소 선생에게 주어진다면, 이를테면 40년쯤 후에 내 나이가 되어 돌아본다면 돌은 멀리 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돌이 떨어진 풀숲을 소 선생 다음 사람이 뒤져 또 던질 겁니다. 소 선생이 던질 수 없던 거리까지."

"선생님이 말씀하시니까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모르겠어요. 내 견해일 뿐이지만, 나이 들어 물렁해진 건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지요. 당사자니까, 끄트머리에 서 있으니까. 그래도 오만해지지 맙시다. 아무리 젊어도 그 다음 세대는 옵니다. 어차피 우리는 다 징검다리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하는 데까지만 하면 돼요. 후회 없이."

*note: 책갈피 한 이유는 내용 그대로. 하지만 지금 옮겨 치면서 보니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조금만 긴 시간을 가지고 볼 기회가 운 좋게 소 선생에게 주어진다면'라는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사실 무탈히 늙어 과거를 돌아볼 기회를 갖는 것도 운이 좋아야 얻을 수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