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 마음이 하는 일, 위고, 2022
읽어본 글이 많았다. 서문을 다시 읽어보니 씨네21을 비롯해 여러 곳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라 했다. 그래서 낯이 익었구나. 오지은의 글을 읽다보면 그렇게 우는 소리를 하면서도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건실히 작업물들을 내놓고 있는 것이 건강염려증 같아 웃음이 날 때도 있지만, 사람 속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으니까. 이번에 다른 뮤지션 에세이를 같이 읽으면서 보니까 오지은의 글은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에 대한 훈련이 많이 된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책의 글들 자체가 컬럼 성격으로 쓰인 것들이니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꾸준한 달리기 습관을 통해 다져진 글의 느낌이 있다는 것. 역시 하루키과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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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에 살았던 적이 있다.
창문이 있는 방은 몇만 원을 더 줘야 했다. 형편은 빠듯했지만 창문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Note:
에세이는 자꾸 나의 경험으로 생각이 튄다. 나는 옥탑방에 살았다. 옥탑방인데도 창문이 없었다. 형편이 빠듯해서 창문을 포기했다. 창문 대신 간유리가 있는 문이 있었다. 방 안에서 간유리를 통해 해가 뜨고 날이 밝고 해가 지고 밤이 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무섭고 괴로웠다.
'형편은 빠듯했지만 창문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와 '형편이 빠듯해서 창문을 포기했다' 간 거리를 생각한다. 내가 그 집에서 살았던 시간 동안 창 밖을 볼 수 있었더라면 나는 좀 다른 사람이 되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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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적은 '간단한 길', '백발백중', '즉각적 열광'의 반대편에 아줌마가 있다. '어려운 길', '백발일중', '점차적 냉담'.
Note:
내가 노화와 관련해 느끼는 생각과 비슷해 적어둔다. 예전엔 하나를 시도했을 때 힘들이지 않고 대개 그 하나가 성공하는 편이었다면, 이젠 열을 시도해도 하나도 성공하지 않는다. 하늘이 인심좋게 쏘아주던 스포트라이트는 더 이상 찾을 수 없고, 하지만 그래도 더듬더듬 손을 짚어가며 계속할 수 밖에. 열 번만 시도해서 그런가봐. 백 번 시도하면 하나는 성공한다니 희망을 가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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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걸려있는 마이너스 50퍼센트 효과라도 조금 없애주면 안될까. (...) 자기 일에 책임을 지는 변변한 어른이 되기도 어렵고, 쇠퇴라는 개념과 싸우기도 어렵고, 거스를 수 없는 노화 또한 유쾌하지 않은데, 이 다루기 까다로운 아줌마의 굴레까지 상대해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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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X헌터>의 곤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상상을 해보자. 그는 이렇게 말하겠지. "이모,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다시 일어서서 그냥 열심히 하면 되잖아." 까만 눈동자의 곤 앞에서 나는 스스로를 더 작고 한심하게 느낄 것이다. 할 말이 없어진 나는 "그래... 곤 말이 다 맞아..." 하고 억지로 일어나겠지만 기운은 여전히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나는 곤 같은 영웅이 아니니까. 역시 손오공 옆에서 계속 버티는 크리링을 무시할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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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가 있어서 죽는 게 아니다. 그만 얻어맞고 싶어서, 이제 다 그만두고 싶어서 내려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 인생이란, 길 한가운데에 샌드백처럼 서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 이제 이 자리에 그만 서 있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닐까.
Note:
이 부분은 뭐랄까 어떤 마음을 참 적확하게 묘사한다는 느낌이어서, 마음이 약할 때 보면 안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