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벌레들

20230222 직접 묻기

나풀  2023. 2. 23. 09:07

수업 그룹모임 건과 관련해 오늘 추가로 얘기를 했다. 그룹을 같이 하기로 했던 애들이 A와 B인데, 나는 B 연락처만 있고 A는 한동안 수업에 나오지 않아서 A와 말할 기회가 없었다. 지난 주에 B를 만났을 때 B가 A와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 A가 큰 그룹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흘렸는데, 처음 그룹 얘기를 꺼냈을 때는 A가 더 흔쾌히 그러자고 했던 터라 좀 의아하다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혼자 이유를 생각해봐야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가',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그런가', '내가 실력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등등 부정적인 쪽으로만 생각이 흘러서, 직접 물어서 답을 듣고 이런 생각들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수업이 끝나고 잠깐 따로 A와 얘기를 해보니 상황이 좀 더 전체적으로 파악됐다. B는 나도 알고 있던 바지만 상당히 야심있는 학생인데, 그래서 원래는 수업 과제도 그룹이 아니라 혼자 하려고 했고 내 제안에도 완전한 동의를 표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제규모를 보니 혼자 하긴 좀 버겁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A는 포함시켰지만 그룹 인원은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직접적인 갈등 상황은 피하고자 하는 노르웨이인적 특성상 내게 명시적으로 말은 하지 않고 최후의 불가피한 순간이 되어서야, A까지 슬쩍 끌어와서 의사를 밝힌 것이다. 네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을 말해보라는 이야기도 진짜 그걸 듣고 끼워줄지 말지 판단하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둘이 하고 싶다는 것을 돌려 말한 것이었다. 
나중에 A에게서 들었는지 B도 메시지를 보내왔다. 자기가 혼자 과제하는 걸 선호해서 그렇지 네게 문제가 있어선 아니었다고. 상처받았다면 미안하고, 다음부턴 좀 더 자기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겠다고.
이 모든 것들을 겪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인간은, 일반화가 좀 그렇다면 나는, 참 어지간히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앞으로 또 이런 류의 부정적 생각에 빠져들 때는 이걸 기억하자.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로 귀결시키는 것도 자기중심적 망상이다. 내가 직접 물어보기로 한 데에는 지난주 일기를 쓰면서 이 일이 생각보다 내게 정신적 데미지를 끼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 노르웨이인들은 솔직한 편이니까 물어보면 아마도 있는 그대로 답을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이런 걸 대놓고 물어보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이런 걸 생각하는 것도 또 그들에게 보여지는 나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데서 오는 것이니, 그것은 그들에게 내버려두고, 들은 답만 생각하자.) 이번에는 이렇게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지만 항상 그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온갖 부정적 생각에 관성적으로 빠져들지 말고 이 경험을 기억하고 끊고 나오자.